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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나의 주기율표

남지원 2015. 7. 27. 17:35

미국의 저명한 의학자 올리버 색스는 유능한 저술가로도 이름을 남겼다. 신경장애 환자들을 진료하며 축적한 사례를 문학으로 풀어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는 색스의 대표작이다. 


지난 2월,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뉴욕타임스에 ‘나의 삶’이란 칼럼을 썼다. 인생의 마지막 날을 준비하며 지난 삶을 반추하고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노과학자의 글은 전세계인들에게 감동과 생각거리를 함께 안겼다.


늙은 과학자는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정리하고 있다. 바랐던 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간혹 글을 쓰며. 지난 토요일 공개된 색스의 새 칼럼 ‘나의 주기율표’는 오늘까지도 뉴욕타임스의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로 꼽히고 있다. 간직하고 싶어 띄엄띄엄 대략이나마 번역했다.









나의 주기율표(My Periodic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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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과학저널이 도착하기를 열렬히 기다린다. 생물학이나 의학 면을 먼저 읽어야 하겠지만 사실 내가 가장 먼저 펼치는 페이지는 자연과학 부분이다. 어린 시절 나는 자연과학(**physical science: 생물이 아닌 것들을 연구하는 과학의 한 갈래. 물리학과 화학, 천문학, 지구과학 등의 영역을 포괄)에 매혹됐다.


네이처 최근호에는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프랭크 윌첵이 쓴 놀라운 아티클이 실렸다. 중성자와 양성자의 아주 작은 질량 차이를 계산한 것이다. 질량 비율은 939.56563 대 938.27231이었다. 아주 하찮은 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비율이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우리가 아는 우주는 절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윌첵은 “미래에는 핵물리학이 원자물리학 수준의 정확함과 범용성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썼다. 아아. 그 혁명을, 나는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프란시스 크릭은 어떻게 뇌에서 의식이 생겨나는지 2030년이면 규명될 거라고 했다. “당신도 그걸 볼 수 있을 거에요” 그는 내 신경과학자 친구 랄프에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당신도요, 올리버. 만약 당신이 내 나이까지 산다면요” 크릭은 80대 후반까지 살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을 연구했다. 랄프는 52세로 일찍 죽었다. 그리고 나는 82세이고, 불치병에 걸렸다. 난 의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도 않고, 사실은 그게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윌첵이 상상하는 새로운 핵물리학이나 자연과학과 생물학의 수천 가지 돌파구를 내가 영영 보지 못하게 될 거란 사실은, 슬프다.


몇 주 전 불빛 가득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별이 가루처럼 흩어져 있는 하늘을 봤다. 그런 하늘은 칠레의 아타카마(세상에서 가장 성능좋은 망원경이 있는) 같은 높고 건조한 고원에서만 볼 수 있는 줄만 알았다. 화려하게 빛나는 하늘은 불현듯 내게 남은 시간이, 내게 남은 삶이 얼마나 짧은지 알려줬다. 천상의 아름다움이나 영원함에 대한 나의 느낌은 덧없음이나 죽음에 대한 느낌과 섞여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친구 케이트와 앨런에게 말했다. “죽어갈 때 이 하늘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가 널 휠체어에 태워서 바깥으로 데려가 줄게”


2월에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칼럼으로 쓰고 나서, 나는 사랑과 감사를 담은 수많은 편지를 받았다. 내가 꽤 괜찮고 쓸모있는 인생을 살았던 모양이다. 모든 편지에 감사한다. 하지만 그 어떤 편지도 별빛 가득한 하늘처럼 나를 감동시키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경험을 해야 했다. 6살에 간 기숙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10살 때 런던으로 돌아오며 헤어져야 했다. 이후 원소들과 주기율표는 내 친구가 됐다. 내 인생 전반에 걸친 긴장들은 나를 자연과학으로 이끌었다. 혹은, 자연과학으로 돌아가게 했다. 삶도 죽음도 없는 자연과학의 세계로.


그리고 지금, 죽음이 더 이상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현존하는 그 무언가가 된 지금 이 순간,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게 된 지금, 나는 내가 소년이었을 때처럼 내 주변을 영원의 상징인 금속과 광물로 다시금 채우고 있다. 내 책상의 한쪽 끝에는 잉글랜드에 사는 친구가 보내준, 아름다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81번 원소가 있다. “탈륨 생일을 축하해요”라고 써 있는, 지난해 7월에 받은 내 81번째 생일의 기념품. 올 7월 초 돌아온 내 82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납에게 할당된 공간도 있다. 90번 원소 토륨이 들어있는 납 상자도 있다. 토륨 결정은 다이아몬드만큼 아름답지만 방사성 때문에 납 상자에 보관해야 한다. 


올 초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간의 절반에 암이 전이됐음에도 기분은 꽤 괜찮았다. 2월 작은 방울들을 간동맥에 주입해 암덩어리를 없애려 시도했을 때 -색전술이라는 치료 방법이다- 나는 끔찍한 2주를 보냈지만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색전술로 간에 전이된 암은 거의 제거됐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잠깐의 휴식 시간이 생겼다. 우정을 다지고, 환자를 돌보고, 글을 쓰고, 잉글랜드에 있는 고향으로 여행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내가 시한부라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나는 쉽게 내 자신에 대해 잊을 수 있었다.


5월과 6월을 지내며 에너지가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내 82번째 생일을 거창하게 챙길 수 있었다. (오든은 늘 “어떤 기분이든지 생일은 잘 챙겨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구역질에 시달리고 있으며 입맛도 잃었다. 낮에는 오한이 들고 밤에는 땀이 난다. 무엇보다도 조금만 무리하면 곧 피로해진다. 매일 수영을 계속하려 하지만 속도는 느려졌고, 호흡이 부족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전까진 부인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안다. 나는 병에 걸렸다. 7월 7일 CT촬영에서는 간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에도 암이 퍼진 것이 확인됐다.


지난주에는 면역 요법이라는 새 치료법을 시작했다. 이 치료법은 위험하지만 이번 치료로 내가 괜찮은 몇 달을 더 보낼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노스캐롤라이나로 여행을 가서 듀크대에 있는 여우원숭이 연구센터를 둘러보고 싶었다. 여우원숭이는 영장류의 조상과 흡사하다. 5000만년 전 나무 위에 살았을, 여우원숭이와 꽤 닮은 조상을 상상하는 일은 행복하다. 나는 그들의 활력과 호기심많은 본성을 사랑한다.


내 책상 위, 납 다음은 비스무트가 올 자리다. 자연 그대로의 비스무트는 호주산이고 작은 리무진 모양의 비스무트 덩어리는 볼리비아에서 채굴한 것이다. 녹은 상태에서 천천히 냉각돼, 호피 마을처럼 계단 모양을 한 아름다운 무지갯빛 크리스탈 모양 비스무트도 있다. 유클리드와 기하학의 아름다움이 담긴, 원기둥과 구 모양의 비스무트도 있다.


비스무트는 83번 원소다. 나는 내가 83번째 생일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83번’이 주변에 있음으로써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더구나 나는 때로 금속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수수한 회색 금속 비스무트에 애착을 갖고 있다. 학대나 소외에 대한 의사로서의 내 감정은 무기물의 세계로까지 확장돼, 비스무트에도 같은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내 폴로늄(84번째 원소) 생일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 주변에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심각한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을 두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 때, 내 주기율표의 끝에는 아름답게 가공된 베릴륨(4번째 원소)이 내 어린 시절을 되새기게 해 줄 것이다. 곧 끝나게 될 내 인생의 시작이, 얼마나 오래 전의 일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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