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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베트남과 오토바이

남지원 2016. 2. 21. 22:58

올 겨울휴가는 베트남 호이안에서 보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출장과 추위에 지쳐 비행거리 가깝고 따뜻한 나라를 찾다 보니 저가항공 직항이 있는 다낭 인근의 이 도시가 낙찰된 것뿐. 2월의 베트남 중부 날씨는 생각보다 추웠다. 20도까지 떨어지는 '추위'에 스카프를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다가도 서울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라는 소식을 들으며 나름의 안도(?)를 했다.


온도에 대한 기대만 빗나간 것은 아니다. 투본강을 끼고 있는 호이안은 15세기 이후 무역도시로 번성했던 곳이다.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거리에 밤이 되면 색색의 등이 화려하게 밝혀진다. 외국 관광객들 뿐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도 주말이면 찾아와 고도의 풍경을 즐기는 곳. 웨딩촬영의 명소. 이 도시에서 하고 싶었던 일은 리조트 선베드에 누워서 뒹굴거리기, 조용히 거리를 산책하기. 첫 번째 소망은 너무 추워서 제대로 못 즐겼고, 두 번째 소망은 오토바이 때문에 이룰 수 없었다. 첫날 거리로 나섰을 때 맞닥뜨린 오토바이 지옥에서 느낀 당혹감이란.. 




직접 찍은 사진은 없어 구글에서 찾은 사진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거리는 온통 오토바이였다. 인도에도 오토바이 차도에도 오토바이.. 개도국의 어느 도시나 그렇듯 횡단보도나 신호등은 거의 없었고 현지인들은 눈치껏 오토바이 행렬을 피해 길을 건넜다. 어떤 곳에서는 차선도 없고 역주행은 흔하다. 호이안에서는 그러려니 했는데 공항에 가는 길 잠시 머물렀던 다낭 시내에서는 진심으로 생명의 위협을 몇 차례 느꼈다. 한번은 한쪽 차선을 간신히 건너고 중앙선 위에 서서 나머지 차선을 건너려고 눈치를 보고 있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중앙선을 밟으며 내 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앞으로 피해도, 뒤로 피해도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는 상황. 피할 수도 서있을 수도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다행히 오토바이가 나와 약 2미터 떨어진 곳에서 핸들을 꺾었다. 다낭도 이럴진대, 호치민이나 하노이는 어떨까.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인구가 9000만명인데 등록된 오토바이 숫자만 3800만대, 반면 자동차는 약 200만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베트남 교통부에서는 매월 평균 300만개(!)의 오토바이 자격증을 새로 발급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로 볼 때 2020년까지 베트남 내 오토바이 숫자는 4050만대에 달할 거라고 한다. 한 집에 오토바이가 두대씩은 있는 셈이다. (출처: 코트라 보고서)


실제로 그랬다. 아이를 안고 오토바이를 달리는 엄마아빠는 부지기수에, 초딩들로 꽉 찬 PC방(다낭 시내에서 여러 PC방들이 성업 중이었음. 한시간 3400동-한국 돈으로 170원-) 앞에는 오토바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학교에도 오토바이가 가득 주차돼 있었다. 대체 이 나라는 몇 살부터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거란 말인가.. 부모와 함께 오토바이를 탄 아이들은 물론 헬멧을 쓰지 않았다. 너무 위험해보였다. 보행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인도는 사실상 오토바이 주차장이라 보행자들은 차도로 내려가 오토바이를 피해 위험천만하게 다녀야 했다. 도시는 경적 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오토바이 통행이 금지된 구시가지 한복판에 들어선 뒤에야 겨우 마음놓고 걸어다닐 수 있었다.



마음놓고 걸을 수 있는 곳은 오토바이 통행이 통제된 구시가지 안쪽뿐이었다.


왜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탈까. 대중교통이 전무하다. 다낭에서는 버스 정류장을 봤지만 호이안에서는 버스 정류장이라곤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오토바이를 탔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려면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자동차는 너무 비싸다. 관광객인 나는 투어 버스나 호텔 셔틀버스에 올라 편히 유적이며 해변을 다녔지만 생활인들이야 어디 그럴까. 지난해 성공적인 세계 도시들의 실험을 취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시재생에 성공한 도시가 그토록 대중교통 체계 마련에 집착한 이유를 대중교통이 없는 곳에서야 느꼈달까. 버스나 지하철로 원하는 곳에 가기 어려운 도시, 집 주변을 조용히 산책할 수 없는 도시에서의 삶의 질이란 얼마나 낮은 것인가.


오토바이 이야기를 하느라 나쁘게 썼지만 여행은 즐거웠다. 참파 왕조의 신전이라는 미선 유적지에서는 멋진 발성의 가이드를 만나 베트남 전쟁 이야기를 들었다. 음식은 전부 놀라울 만큼 맛있었다. 화이트로즈와 몇몇 음식들은 수입해서 가게를 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고수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도 나름의 성과. 첫날과 마지막 날은 날씨가 좋아 수영장에도 들어가고, 바닷가 선베드에서 맥주도 마셨다. 아, 그리운 베트남 맥주. 


호이안 안방비치에서 마신 라루.


베트남의 물가는 한국의 1/3 수준이다. 조금 싼 식당에서는 맥주 한 병이 천원,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이천~삼천원, 호텔 미니바에서는 천칠백원 정도. 이러니 맥주를 하루에 서너병은 마셔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공이며 333 등 종류별로 마셔 보고 태국 맥주보다는 맛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 중부지역 맥주라는 라루 맥주에 정착했는데 세상에, 마지막 날 마트에서 대충 집어온 Dai Viet 이라는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땅을 치고 통곡했다. 이걸 겨우 세 캔밖에 안 사왔다니... 한 캔에 오백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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