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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공영방송(1)] 사장 임명은 청와대 입맛대로, 방송 편성은 사장 맘대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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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공영방송(1)] 사장 임명은 청와대 입맛대로, 방송 편성은 사장 맘대로

남지원 2016. 10. 13. 19:07

지난해 11월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인호 KBS 이사장과 이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고대영 전 보도본부장을 청와대 지명 사장 후보로 검토해달라”고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KBS 사장 선임 절차가 한창일 때였다. 폭로자는 사장 후보로 나섰던 강동순 전 KBS 감사관이고, 당시 이사들의 말을 전하는 식으로 ‘청와대 낙점설’을 점화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청와대가 방송사 사장 선임에 개입하느냐”고 해명했다. 하지만 고 사장은 여당 추천 이사들의 몰표를 받고 사장직에 올랐다. 고 사장은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사장에 입후보할 때 청와대와 통화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할 때 청와대 압력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제가 있다 없다고 얘기드릴 수 없는 사안”이라며 “연락은 여러 군데서 받는다”고 모호하게 답변했다. 청와대가 공영방송 사장 선임과 보도에 개입해온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전국언론노조KBS본부는 고 사장 선임 시 청와대 개입 의혹에 대한 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한 상태다.

정권이 공영방송 보도와 조직을 옭아매는 출발점은 사실상 ‘사장 선임권’으로 압축되는 인사권이다. KBS 사장을 결정하는 KBS 이사회는 여야 추천이사 7 대 4, MBC 사장을 결정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는 여야 6 대 3으로 구성됐다. 방송법상 사장은 방송편성에 개입할 수 없으며 반드시 편성책임자를 선임하고 자율적인 편성을 보장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막강한 인사권을 갖고 내부를 통제한다. 언론노조 관계자는 “연임을 위해서는 사장이 여당 이사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내부 단속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권에 잘 보여야 하는 사장이 인사권을 쥔 조직에서 보도는 자연스레 기울고 위축되고 있다. 정권에 민감한 보도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방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KBS에서는 지난해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다룬 <시사기획 창>의 ‘훈장 2부작’ 방영이 미뤄지던 도중 제작에 참여한 탐사보도팀 기자들이 타부서로 전출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2월 1부가 방송됐지만 친일 전력자들에 대한 훈장 수여를 다룬 2부는 아직까지 방송되지 않았다. 연임을 노리던 조대현 당시 KBS 사장이 눈치를 본 결과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KBS 관계자는 “인사발령은 KBS의 인사원칙에 따라 장기 근무자를 교체하는 정규 인사였으며, 방영되지 않은 2부의 경우 재취재 지시가 내려갔는데 아직 진척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영방송 MBC에서는 2012년 파업에 참가한 기자와 PD 상당수가 비제작부서로 전보됐다. 이후로도 내부에서 문제제기하는 기자와 PD들을 제작과 관련 없는 부서로 보낸 뒤 그 자리를 경력기자로 메운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MBC의 한 기자는 “보도국에는 수뇌부에 반기를 들면 쫓겨나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크게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보도국에 남아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할지, 문제제기하고 쫓겨날지 선택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부 인사권을 쥔 사장의 정치적 독립성이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길환영 사장이 물러난 뒤 KBS에 사장이 없을 때 문창극 친일 발언 단독보도가 나왔다는 사실은 청와대의 보도통제 고리가 끊어지면서 그제야 보도의 자율성이 보장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사장 한 사람의 가치관이 공영방송의 보도 방향을 얼마나 좌지우지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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