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햄버거 사망 아동 5중 안전장치도 소용없었다.. 허울뿐인 아동학대 방지대책 본문

우리나라 이야기/아동·가족

햄버거 사망 아동 5중 안전장치도 소용없었다.. 허울뿐인 아동학대 방지대책

남지원 2016. 10. 13. 19:21

정부가 “올해를 아동학대 근절 시스템 구축 원년으로 선포한다”며 지난 3월 내놓은 아동학대 방지 종합대책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달 2일 햄버거를 먹고 이를 닦던 중 쓰러져 숨진 4세 소녀.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촘촘한 아동학대 방지 그물망을 수립하겠다던 정부 대책은 너무나 쉽게 다섯번에 걸쳐 뚫렸다.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어린 목숨이 꺼져가는 것을 모른 채 지나쳤다.

보육원에서 엄마 손에 인계된 후 한 달 만에 모진 폭행을 당하다 숨진 것으로 조사된 ㄱ양의 생애 마지막 한 달을 따라가 봤다. ㄱ양이 살던 집 주변에는 도보로 5~10분 거리에 주민센터, 보건소, 병원, 학교, 지구대가 몰려 있었지만 ㄱ양은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보육원 입·퇴소를 관리하는 인력이 1명뿐인 지자체는 아이를 친모에게 보낼 때 양육 가능한 환경인지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다. 지자체는 보육원 퇴소 아동을 사후 관리할 의무가 있지만, ㄱ양의 집을 방문 점검한 사람은 없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한부모가정인 ㄱ양 모녀의 존재를 읍·면·동 주민센터 공무원들이 인지했겠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의 관리망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지난 두 번의 대책에서 아동학대 신고의무자가 대폭 늘어났지만 ㄱ양의 행동반경에서는 신고의무자를 접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ㄱ양의 사례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저소득층 가구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고, 아동학대 부모 상당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 정부는 지역사회와 밀착한 통반장들에게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해 아동학대 감시망을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통반장은 “우리가 어떻게 파악하느냐”고 반문한다. ㄱ양을 보호할 수 있었던 다섯 개의 안전망은 모두 무력하게 아이의 죽음을 방치했다.

정부는 2년 전에도 8세 서현이가 계모의 폭행에 숨지면서 여론이 들끓자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조기발견·보호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지난 1월 부천 ‘원영이 사건’이 발생하자 또다시 ‘종합대책 확대 개정판’을 내놓았다. 하지만 ㄱ양의 죽음을 여전히 막지 못했다.

지난 3월 아동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상복을 입고 영정을 든 채 아동보호 예산을 증액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인력을 확충하라고 제안했다. 정부는 2년 새 두 번의 대책을 내놨지만 올해 편성된 아동학대 예방 예산은 지난해보다 67억원 줄어든 185억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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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주안역 뒷골목 언덕배기의 오래된 연립주택가 반지하방. 이곳은 28시간 동안 굶다가 엄마의 발길질 속에 죽어간 ㄱ양(4)이 생애 마지막 한 달을 보낸 곳이다. 지난 9일 이곳을 찾았을 때 ㄱ양이 살았던 3층짜리 건물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ㄱ양 모녀와 같이 살았던 엄마 친구 2명도 사건 직후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이들은 ㄱ양 폭행에 가담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위층 입주민도 곧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했다. 1층의 슈퍼마켓을 혼자 지키고 있던 집주인은 “한 달 전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처음 이 집에 왔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수립한 정부의 아동학대 종합대책은 소용이 없었고, 기존에 있던 규정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ㄱ양 집 주변에는 도보로 5~10분 거리에 주민센터, 지구대, 보건소가 밀집해 있지만 도움이 되지 못했다. ㄱ양의 마지막 행적을 되짚어본 결과 엄마의 학대 속에 죽어가기 전까지 정부의 아동학대 감시체계에는 5번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① 서류 한 장으로 양육자격 심사 

ㄱ양은 2012년 태어났다. 아내와 이혼 후 ㄱ양을 키우던 아빠가 일자리를 지방으로 옮긴 데다 할머니마저 건강이 악화돼 ㄱ양은 지난 4월 인천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엄마 ㄴ씨(27)가 보육원에서 딸을 데려간 것은 7월4일이었다. 아무리 친모라 하더라도 아이를 불과 한 달 만에 사망케 할 사람을 미리 걸러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아동복지법은 보육원 아동을 보호자가 데려갈 때는 전문가로 구성된 지방자치단체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양육자격을 충분히 심사하도록 하고 있다. ㄴ씨는 어떻게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의문은 인천시 아동복지관을 직접 찾아가본 순간 풀렸다. 상가 단지 한쪽에 자리한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은 10여명뿐이었다. 이들이 인구 280만 대도시 인천의 양육 심사를 전담하고 있다. 인천에는 시장을 위원장으로 한 심의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ㄴ씨를 심사한 것 역시 심의위원회가 아닌 이들이었다. 아동복지관 관계자는 “매년 보호대상 아동 입·퇴소가 400여건 발생하는데 이때마다 심의위원회를 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ㄴ씨의 양육 심사는 서류상으로만 이뤄졌다. 아동복지관은 ㄴ씨에게서 양육계획서를 제출받았지만 부모의 소득이나 재직증명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ㄴ씨는 양육계획서에 “대형마트에서 일하며 월 100만원을 번다. 낮에는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저녁에는 직접 돌보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ㄴ씨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② 허술한 사후관리 

인천시는 아동복지법에 따라 보육원 퇴소 아동이 새 환경에 잘 적응하는지 사후관리할 의무가 있었지만, ㄱ양은 방치됐다. 아동복지관은 상·하반기 2차례에 나눠 한꺼번에 퇴소 아동의 가정을 방문했다. 7월 친모에게 인계된 ㄱ양은 오는 12월 말에나 담당 공무원의 점검을 받을 예정이었다. 인천시가 좀 더 일찍 방문했더라면 끔찍한 결과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예견된 비극이었다. 인천시의 귀가 아동 사후관리는 아동복지관 직원 1명이 전담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월 아동학대 종합대책을 내놓을 당시 “전담 인력과 예산 등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으면 어떤 대책도 소용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그대로 현실이 된 셈이다. 아동복지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입소는 시에서, 퇴소는 구·군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제도를 정비해 적어도 분기별로 현장점검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③ 읍·면·동 주민센터 관리망 구멍 

ㄱ양 집 주변에는 도보 5분 거리에 주민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읍·면·동 주민센터의 사회복지 공무원을 중심으로 아동학대를 밀착 감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날 찾아간 주민센터 사무실 한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관내 한부모가구 73가구’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는 ㄱ양 모녀를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ㄴ씨가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언론보도 후에야 알았다. ㄱ양의 주민등록을 조회해봤지만 관내 주민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ㄴ씨의 경우는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주거지를 자주 옮기는 저소득층 소규모 가구가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본가에 주소지를 둔 채 사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④ 신고의무자 사각지대 

게다가 ㄴ씨는 ㄱ양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고, 병원에 데려간 적도 없었다. 법령이 정한 신고의무자인 사회복지 공무원은 물론, 보육교사·의료인 등과 접촉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아동을 학대하고 방임하는 부모의 경우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지 않을 확률이 높다. ㄱ양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한 대책은 부모나 이웃의 ‘선의’뿐이다.

⑤ 통반장이 막을 수 있나

ㄱ양이 살았던 동네의 통장 ㄷ씨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정부의 종합대책에 통반장을 활용해 아동학대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ㄷ씨는 아동학대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교육 여부가 아니다. 이웃 사람에게도 문을 잘 열어주지 않는 도시의 특성상 통반장이 아동학대를 파악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ㄷ씨는 “그 모녀가 우리 동네에 살았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곳은 연립주택가라 들고 나는 사람이 많다”면서 “아무리 통장이라도 계속 바뀌는 동네 사람을 어떻게 파악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정부의 종합대책은 너무 쉽게 뚫렸다. 우리는 이번에도 ㄱ양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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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기 싫어하거나·계절 안 맞는 옷차림…112로 신고하세요
<‘아동 학대’ 숨은 징후>


아동학대 10건 중 8건은 부모가 저지른다. 내밀한 집 안에서 벌어지는 학대의 특성상 아이들을 폭력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신고가 가장 중요하다. 

이웃집 아이가 우는 소리나 비명소리가 들릴 때, 아이의 몸에 설명이 어려운 상처가 있을 때는 학대 사실을 추측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징후가 없을 때는 어떻게 피해 사실을 알 수 있을까.

평소 학대를 당하는 아동은 어른과의 접촉을 꺼리거나 집에 가기를 무서워하는 등 특정한 행동적 징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거나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등 지나치게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통제불가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학대와 방임을 겪는 아이들의 경우 체격이 왜소하고, 더럽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 외양부터 눈에 띄기도 한다. 잦은 결석도 학대의 징후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말을 걸면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할 수 있다”며 적극적 신고를 당부했다. 

지난해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8279건이다. 전체 아동인구 중 학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판정된 아동의 수를 계산한 학대아동 발견율은 1000명당 1명 수준으로 미국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아동학대는 신고 의무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112를 통해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신고자의 인적사항 기재가 생략되고 필요시 신변안전 조치를 받을 수도 있다. 

오인 신고로 밝혀지더라도 무고의 목적이 아니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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