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나라 밖 이야기/주간경향 (10)
취재수첩
“성노동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 중 하나이며, 차별과 폭력과 학대의 위험에 늘 노출돼 있습니다. 성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이들이 겪고 있는 학대와 폭력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성노동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비범죄화(decriminalizing)하는 것입니다.” 8월 11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국제앰네스티의 정책결정 포럼에서 발표된 ‘성매매 비범죄화’ 결의안은 전 세계 여성·인권단체들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국제앰네스티는 앞으로 이 결의안에 바탕해 모든 정책을 수립하고 각 국가에서 활동을 벌이게 된다. 국제 인권단체의 대명사격인 국제앰네스티가 성매매를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입장을 정리한 것은 각국의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성매매 전면 비범죄화가 성판매자 인권..
그리스 아테네의 소포클레우스 거리, 시에서 설치해 놓은 R21번 쓰레기통에서는 여름날의 열기에 쓰레기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니코스 폴로노스(55)는 근처 식료품점과 가게에서 버린 쓰레기가 쌓여 있는 이 쓰레기통을 뒤져 일상을 영위한다. “가끔 고철이 나오면 팔아서 돈을 벌고요, 먹어도 될 것 같은 음식이 나오면 먹기도 해요. 종이나 캔, 빈병 같은 것도 재활용품으로 팔 수 있어요.” 쓰레기통 안을 꼼꼼하게 살펴보던 폴로노스가 말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왜 쓰레기통을 뒤지나 폴로노스는 하루에 8시간씩 쓰레기통을 뒤지고, 1㎏당 50원인 구리선과 70개를 모으면 1.5유로를 주는 알루미늄 캔을 모아 판다. 그가 하루에 손에 쥐는 돈은 5~10유로(약 6000~1만2000원) 남짓이다. R21번 쓰레기통..
4월27일 새벽 6시, 스위스 취리히의 171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급 호텔 ‘바우어 오 락’의 고요하던 로비에 갑자기 10여명의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거침없이 회전문을 지나 프론트 데스크로 향한 수사관들은 영장을 제시하며 연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투숙한 국제축구연맹(FIFA) 임원들의 방 호수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무수한 음악가와 화가들이 묵었고 알프레드 노벨이 노벨평화상을 처음으로 구상했던 이 아름다운 호텔은 순식간에 범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이날 체포작전은 전례없이 우아했다. 호텔 컨시어지 직원은 한 임원의 방으로 전화를 걸어 “선생님, 아무래도 문을 열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발로 차고 들어가야 합니다”라고 정중히 말했다. 체포까지는 채 두 시간이 ..
도시는 버려지고 부서진 건물들로 폐허가 됐다. 멀쩡하게 서 있는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대부분이 흉칙하게 망가졌다. 벽에는 총알 자국이 가득하고, 거리에는 쓰레기와 건물 잔해가 널려 있다. 주민들이 대부분 도망쳐버린 도시는 유령이라도 나올 것처럼 텅 비었다. 최근 유니세프가 블로그를 통해 전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160㎞ 떨어진 도시 홈스의 풍경이다. 홈스는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4년 전 처음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한 지역이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시리아가 3월 15일 내전 발발 4주년을 맞았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15일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전국 규모의 시위로 시작했다. ‘아랍의 봄’ 분위기에 편승한 반정부 시위로 시작된 시리아 내 정정불안은 아사드 정권의 무차..
“사우디아라비아를 개혁한 예리한 권력자.” 1월 23일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압둘라 국왕은 폐렴으로 지난해 말부터 입원치료를 받다가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왕세제(왕위를 잇는 왕의 아우)였던 압둘라의 이복동생 살만(79)이 왕위를 물려받게 됐다. 관례에 따라 사우디에서는 이날 곧바로 장례가 치러졌고, 왕위 승계는 정해진 대로 빠르고 순조롭게 이뤄졌다. 왕위 승계과정은 순조로웠지만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니파 아랍국가들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사우디의 권력교체는 중동의 역학관계를 크게 뒤흔들 수 있다. 사우디가 불안정한 틈을 타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이 역내에서 영향력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반이슬람 집회를 주도하는 이들의 마음속은 편견과 냉담, 증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여는 집회에 참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올해 신년사에서 최근 독일에서 번지고 있는 반(反)이슬람 집회에 대해 직접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2014년 10월부터 ‘PEGIDA(페기다)’라는 단체가 매주 월요일마다 반이슬람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보통 폭력적이고 과격한 양상을 보이는 극우파와는 겉보기에 상당히 다르다. 스스로 네오나치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선언했으며, 시위에 폭력적인 구호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슬람 혐오 감정, 일반 시민들도 공유 대신 이들은 “무슬림 이민자들이 지나치게 유입돼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교 문화와 전통이 퇴색되고 있다..
2011년 아랍을 휩쓴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이집트에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을 때, 카이로의 민주화 성지인 타흐리르 광장에서 늘 시위대의 선봉에 섰던 한 전직 경찰이 있었다. 아흐메드 알 다라위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군사정권 하에서 만연한 부패에 질려 경찰을 그만두고 사기업에 다니다가 혁명이 일어나자 민주화 투사가 됐다. 그는 세상이 곧 바뀔 것이라고, 독재가 끝나고 이집트에도 봄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시위 끝에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는 물러났다. 하지만 다라위가 바라던 세상은 오지 않았다. 시위대는 세속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로 나뉘어 싸웠고 이 틈을 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절망한 다라위는 점차 이슬람 극단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 지난 가을 종적을 감췄다. 그는 이라크로 건너갔고, 수니..
“공화당은 분명 기분 좋은 밤을 보냈을 겁니다. 그들은 선거를 잘 치른 것을 칭찬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11월 5일 백악관 이스트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전날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예상대로 상원, 하원, 주지사 선거 모두에서 공화당에 참패했다. 이로써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기간 치러진 두 차례 중간선거에서 모두 패배한 대통령이 됐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 중 유일하게 두 번 연속으로 소속당 상하원 의석이 모두 줄어든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얻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미국 연방 하원의원 전체와 상원의원 100석 가운데 36석, 주지사 50명 중 36명을 뽑았다. 공화당은 상원 경합주 13곳 중 대부분의 주에서 승리해 과반을 확보했..
스페인과 미국에서 발생한 감염자들의 사례는 이들 사회의 무능과 비도덕, 경제정책 실패 등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서아프리카에서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만들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결국 아프리카 대륙 바깥으로 나왔다. 첫 번째는 미국이었다. 9월 30일 라이베리아인 토머스 에릭 던컨(42)이 미국에서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아프리카 대륙 바깥에서 처음으로 에볼라 확진 판정이 나왔다. 곧이어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에 감염된 뒤 스페인으로 이송된 선교사를 돌봤던 간호사도 에볼라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에서도 던컨을 치료했던 간호사들이 에볼라에 감염됐다. 서아프리카 바깥에서 에볼라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선진국의 의료시스템과 사회시스템조차도 전염병을 원천 차단하기에 부족하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
일주일 만에 미국에 연루된 스파이 사건이 두 건이나 공개되자 독일은 발칵 뒤집혔다. 독일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높아지며 미국에 대한 여론은 극도로 나빠졌다. “미국 대사관의 미국 중앙정보국(CIA) 최고 책임자에게 독일을 떠나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독일 정부의 슈테판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이 같은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일주일 만에 두 건의 미국 스파이 사건이 잇따라 공개된 데 따른 극약 처방이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미국과 독일 사이의 관계가 ‘외교적 지진’으로 치닫고 있다고 표현했다. 독일 연방검찰은 지난 2일 31세의 독일연방정보국(BND) 요원을 러시아를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했다. ‘마르쿠스 R’라고 알려진 이 요원은 지난 5월 28일 러시아 대사관에 메일을 보내 기밀을 팔겠다고 ..